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혼선은 필연적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의 방향도 재조정되고, 부처 간 조율이 끝나지 않은 정책 초안들이 공론화되며 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이런 이유로,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국정기획위원회가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한 것은 다소 낯설지만 바람직한 접근이었다.
국정기획위는 출범 첫날, 언론에 미확정 정책안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결정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민 혼란이 커지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우려였다. 정리되지 않은 개별 의견이 전체 정부 입장인 양 보도되는 것은 정책 혼선을 불러오고, 정부 신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태도는 과거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비슷하게 나타났지만, 이번 정부는 더욱 조직적이다. 브리핑 창구를 대변인으로 일원화하고, 언론 대응에도 절제를 강조했다. 정제된 메시지로 출발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그런데…돌발적으로 터진 문건 유출
하지만 그 절제된 태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터졌다. 국정 핵심 부처인 행정안전부에서 작성한 ‘민생 회복 지원금’ 관련 내부 문건이 공식 발표도 전에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이 문건은 국민 대상 보편지원 계획을 담은 것으로, 지급 금액과 계층별 차등 지급안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16일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이 문서는 곧바로 언론 보도로 이어졌고, 여당 내부에서도 “당정 협의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유출된 건 심각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국정기획위가 언론에 ‘신중한 보도’를 요청한 직후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곧장 내부 감찰에 착수했다. 감사관실은 일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최대 10시간에 이르는 조사를 벌였고, 최종 결재권자 승인 없이 외부로 나갔다면 공무원 복무규정 위반으로 징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언론 자제를 요청한 이유, 이번 사태로 드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자료 유출’을 넘어, 정부 출범 초기 정책 설계의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국정기획위가 언론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공식 입장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유출된 초안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며, 일부는 정책이 확정된 양 오해하고 일부는 ‘소득 상위 10% 차별’ 등 논쟁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자. 언론이 아닌 내부에서 터진 이 유출은, 정부의 조율 과정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결정되지 않은 정책 초안은 혼선을 부른다’는 국정기획위의 입장은 이 사건을 통해 오히려 정당성을 획득했다. 언론을 제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론의 시점을 신중하게 조절하고자 했던 것이다.
공무원 윤리, 신뢰 회복의 출발점
이번 유출 사건의 파장이 큰 이유는 단순히 내부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국정의 방향성과 직결된 중요한 정책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행안부는 새 정부 들어 기본소득, 기본의료, 기본교육 등 주요 국정 아젠다 실무를 담당할 것으로 알려진 핵심 부처다.
이러한 부처에서의 문건 유출은 단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유출자가 실무 공무원인지, 더 높은 수준에서 벌어진 일인지는 감찰 결과가 밝혀줄 일이지만, 공직자의 윤리와 보안 의식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공무원이 유출한 정보를 통해 가족이나 지인이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면, 이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에서, 정보 유출은 신뢰의 붕괴를 뜻한다. 신뢰는 정부가 무엇을 하든 근간이 되는 자산이다.
조용한 출발, 헛되지 않도록
이재명 정부는 유례없이 빠르게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차분하게 언론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국정기획위의 언론 대응 요청은 일방적 통제가 아닌, 신뢰 기반의 협조 요청으로 읽혀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순간의 내부 기강 해이로 그 신중함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유출 사건은 보여준다. 정부가 강조해온 ‘질서 있는 출발’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 관계자 문책은 물론, 정보 보안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정책은 말보다 실행에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책 실행 전, 조율과 준비의 과정에서 신뢰를 잃는다면 그 정책이 아무리 정교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공무원 조직이 한몸처럼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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